이공계 우대 공고만 가득하던 취업 시장에서 마주한 낯선 공고
취업 준비를 시작하고 가장 먼저 느꼈던 건 내가 설 자리가 참 없다는 사실이었다. 채용 사이트를 열어보면 죄다 반도체, 배터리, 소프트웨어 개발 같은 이공계 전공자만 찾는 공고들뿐이었다. 가끔 문과생도 지원할 수 있다고 적혀 있는 공고를 눌러보면, 실상 영업이나 마케팅 직무에서 이공계 전공자를 우대한다는 문구가 아주 작게 쓰여 있곤 했다. 그러던 중 며칠 전에 인터넷 뉴스에서 효성그룹이 창사 이래 처음으로 인문계 전공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신입사원 공개채용을 진행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2026년 인문대학생 신입사원 채용’이라는 낯선 타이틀이었다. 지원서 접수 기간은 지난 13일부터 오는 22일까지라고 나와 있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내 눈을 의심했다. 보통은 인문계를 배제하거나 극소수만 뽑는 공채가 대부분인데, 아예 대놓고 이공계를 제외하고 문과생만 받겠다는 공고는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1966년 창립한 이후 6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는데, 이게 나 같은 취준생에게 진짜 기회가 될 수 있을지 아니면 그냥 이목을 끌기 위한 일시적인 이벤트일지 머릿속이 조금 복잡해졌다.
IT 국비지원 교육을 기웃거리며 느꼈던 현실적인 피로감
사실 이번 공고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 전공을 거의 포기하고 다른 길을 알아보고 있었다. 동기들 중 몇 명은 진작에 IT 국비지원 교육이나 디지털 전환 교육 쪽으로 발을 돌렸다. 울산과학대 같은 곳에서 진행하는 SK AX 교육생 모집 요강을 보면서 나도 저런 걸 해야 하나 고민했던 적이 있다. 교육 기간 동안 월 최대 150만 원의 장학금과 교육지원금을 주기도 하고, 수료하면 SK 계열사 채용 연계 혜택이나 서류 면제 기회까지 준다고 하니 솔직히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신촌 근처의 스터디룸에서 파이썬 기초 책을 펼쳐놓고 끙끙대던 며칠 동안 내가 느낀 건 극심한 피로감뿐이었다. 영문학을 전공하면서 텍스트를 읽고 해석하는 일에는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는데, 화면 가득한 코드 문법들은 아무리 들여다봐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억지로 이 길을 간다고 한들, 원래부터 이쪽 공부를 해온 사람들과 경쟁해서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계속해서 발목을 잡았다. 매달 나오는 지원금 수당을 받으며 버틴다 해도, 결국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껴입는 기분이었다.
국민취업지원제도 상담실에서 보냈던 답답한 시간들
그렇게 갈팡질팡하는 사이에 생활비는 계속 떨어져 갔고, 결국 나는 국민취업지원제도를 신청해 매달 50만 원씩 나오는 구직촉진수당을 받으며 버티기 시작했다. 거주지 근처의 고용센터를 찾아가 상담을 받는데, 상담사분의 조언도 결국은 비슷한 맥락이었다. 인문계열 졸업 예정자나 졸업생들은 취업 문턱이 너무 높으니, 기술을 배우거나 직업훈련 과정을 거치는 게 빠르다는 얘기였다. 상담 카드의 희망 직무 란에 ‘기획’이나 ‘홍보’라고 적어 넣을 때마다 은근히 풍겨오는 무언의 압박 같은 것이 느껴져 마음이 편치 않았다. 상담사분은 요즘 건설사채용이나 현대건설채용 같은 곳에서도 인문계 직군을 아주 가끔 뽑기는 하지만 워낙 소수라 힘들 거라고, 차라리 물류나 안전 관리 같은 자격증을 따보는 건 어떻겠냐고 넌지시 권했다. 매달 보고서를 제출하고 수당을 받는 그 과정 자체가 어딘가 내 무능함을 공식적으로 확인받는 절차 같아서, 센터를 다녀오는 날이면 늘 기운이 빠지곤 했다.
지원서 마감 직전에 겪었던 자소서 쓰기의 난관
그런 와중에 뜬 효성그룹의 문과 전용 공채 소식은 마른하늘에 단비 같으면서도, 동시에 또 다른 스트레스의 시작이었다. 이공계 지원자들과 경쟁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 분명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서류 통과가 쉬울 리는 없었다. 보통의 공채 자소서를 쓸 때는 내가 얼마나 ‘기술적 이해도’를 갖췄는지, 혹은 이공계 부서와 어떻게 협업할 수 있는지를 억지로 짜내어 적어야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예 인문학적 소양을 어떻게 회사 업무에 녹여낼 것인지를 묻는 문항들을 채워 넣어야 했다. 집 근처 카페에 앉아 며칠 동안 노트북 화면만 노려보며 첫 문장을 썼다 지우기를 수십 번 반복했다. 대학교 4학년 1학기 때 처음 이력서를 쓰던 시절로 돌아간 것 마냥, 내가 대학 생활 동안 배운 게 정말 쓸모없는 일이었나 하는 자괴감이 불쑥불쑥 올라왔다. 인문학적 관점이 사업 기획이나 마케팅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구구절절 쓰면서도, 내가 쓰고 있는 글이 알맹이 없는 껍데기처럼 느껴져 손가락이 자꾸 멈칫거렸다.
결국 서류를 접수하고 나서도 지워지지 않는 의구심
결국 접수 마감 시간인 22일 저녁을 몇 시간 앞두고 겨우 지원서 제출 버튼을 눌렀다. 창사 60년 만에 처음 시도하는 채용이라니 회사 내부에서도 어떤 기준으로 사람을 뽑을지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엉뚱한 걱정마저 들었다. 어쨌든 서류는 넘어갔고 내 손을 떠났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홀가분해지지는 않았다. 이 공고가 뜨자마자 전국의 수많은 문과 취준생들이 다 이쪽으로 몰렸을 텐데, 경쟁률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 뻔했다. 만약 이번에도 서류에서 떨어진다면, 나는 다시 국비지원 컴퓨터 학원을 알아봐야 할지 아니면 그냥 원래 하던 대로 막연한 일반 공채 공고를 기다려야 할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이번 주말에는 그냥 밀린 잠이나 자면서 생각이라는 걸 좀 멈추고 싶다.

구직촉진수당 받는 동안 느껴지는 압박감이 딱 그런 것 같아요. 제가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요.
코드 문법이 쉽게 안 보이는 건, 원래 다른 분야에서 공부한 사람에게는 정말 당연한 문제 같아요. 저는 학부 때도 영문학 논문을 쓰면서 비슷한 경험을 했었어요.
국비지원 교육 생각하는 것도 쉽지 않네요. 상담사님 말씀처럼 자격증 준비하는 것도 고려해봐야 할 것 같아요.
처음에는 기술적인 부분을 강조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정말 힘들었어요. 인문학적인 내용까지 써내야 하니, 학부 공부가 얼마나 의미가 있었나 고민하게 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