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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진복을 처음 입던 날의 어색함과 기록들

설렘보다는 긴장이 앞섰던 첫 출근

첫 출근 날 아침, 잠이 잘 오지 않아 새벽부터 뒤척였다. 공고를 보고 지원할 때만 해도 내가 반도체 관련 업무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채용 사이트에서 흔히 보이던 깔끔한 사무직 공고들과는 결이 조금 달랐기 때문이다. 보훈대상자 채용 전형으로 합류하게 되었는데, 입사 전에는 막연히 ‘교육을 잘 받으면 되겠지’라는 생각만 했다. 하지만 막상 현장에 도착하니 공기는 사뭇 달랐다. 사람들은 모두 바빠 보였고, 나는 내가 어디서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 서성거렸다. 신입사원 교육을 담당하는 분이 나를 데리고 간 곳은 탈의실이었다. 거기서 처음으로 방진복을 받았다. 사이즈가 애매해서 팔 부분이 자꾸 헐렁거렸는데, 이게 내 첫 업무 환경의 시작이었다.

방진복과 함께 시작된 낯선 일상

방진복을 입는 건 생각보다 훨씬 번거로운 일이었다. 단순히 옷을 걸치는 게 아니라 먼지 한 톨이라도 들어가면 안 된다는 강박 속에서 지퍼를 끝까지 올리고, 모자까지 눌러써야 했다. 밖에서 보던 반도체 공정은 화려해 보였지만, 실제로 안에서 마주한 현실은 꽤나 투박했다. 선배들은 나에게 설비 보전의 기초부터 차근차근 가르쳐주겠다고 했지만, 사실 첫 며칠은 장비 앞에서 제대로 서 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장비 분해와 조립, 셋업 과정을 반복하는 일은 생각보다 체력이 많이 소모되었다.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한 번은 나사를 잘못 조여서 선배한테 크게 한 소리 들었는데, 그때의 그 민망함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당시에는 내가 이런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싶어 밤마다 걱정이 많았다.

교과서와 현장 사이의 간극

입사 전에는 반도체설비보전기능사 자격증을 따야 하나 고민도 했었다. 책으로만 보던 지식들이 현장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조금이라도 빨리 적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현장에 투입되고 나니, 자격증 책에 있는 내용들은 정말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았다. 현장에는 장비마다 특유의 소음과 진동, 그리고 그날그날 발생하는 예상치 못한 트러블들이 널려 있다. 책에서는 절대 가르쳐주지 않는, 소리만 듣고도 장비 상태를 파악하는 선배들을 보면 신기할 따름이었다. 가끔은 교육을 받는 와중에도 ‘이걸 왜 이렇게까지 세세하게 가르치지?’ 싶을 정도로 스파르타식 OJT가 이어지기도 했다. 나중에는 그게 다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필수 과정임을 이해하게 되었지만, 그 당시는 매일매일이 벅찼다.

정해진 메뉴얼 그 너머의 풍경

교육 기간 동안 밥 먹으러 가는 식당 가는 길도 하나의 숙제였다. 사내 식당은 규모가 커서 길을 잃기 십상이었고, 밥값은 대략 6천 원에서 8천 원 사이였던 걸로 기억한다. 가끔은 메뉴가 마음에 안 들 때도 있었지만, 선택권이 없으니 그냥 먹는 수밖에 없었다. 같이 들어온 동기들과 식사하면서 하는 이야기는 뻔했다. ‘오늘 교육 내용 이해했어?’, ‘나는 내일 현장 투입이 벌써 겁나.’ 이런 시시콜콜한 걱정들이 우리 하루의 전부였다.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나 복지 혜택 같은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오로지 내일 있을 교육을 무사히 통과하는 게 목표였다. 어떤 날은 너무 피곤해서 퇴근하자마자 씻지도 않고 잠들기도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남는 것들

신입사원 교육이 끝나갈 무렵, 나는 여전히 내가 이 일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었다. 현장에서 도메인 지식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 기계가 왜 사람처럼 예민하게 반응하는지 조금씩 알아가는 수준이었다. 가끔 TV에서 삼성 같은 대기업 입사 소식을 접하면, 그들이 겪었을 방진복의 답답함이나 현장의 막막함이 떠올라 괜히 혼자 씁쓸한 웃음을 짓기도 한다. 드라마나 뉴스에서 보는 화려한 기업 문화와 달리, 우리가 보내는 시간은 아주 지루하고 반복적이며 때로는 무력하다. 하지만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또 다른 무언가가 쌓여 있겠지. 나는 지금도 여전히 현장에서 헤매고 있다. 완벽하게 적응했다는 느낌은 들지 않지만, 적어도 방진복 지퍼를 올리는 속도만큼은 처음보다는 확실히 빨라졌다. 그것만으로도 오늘 하루는 충분히 버틴 셈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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