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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거버넌스라는 단어가 서류에 보이기 시작했다

ESG가 뭐길래 갑자기 거버넌스 타령인가

최근 업무 중에 부쩍 ‘거버넌스’라는 단어를 자주 마주하게 됐다. 처음에는 이게 대체 무슨 소린가 싶었다. 예전에는 그냥 ‘협력’이나 ‘체계’라고 부르면 될 것 같은 일들도 다들 거버넌스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인다. 얼마 전 참여했던 지역 기반의 지-산-학 협력 모임에서도 그랬다. 대진대학교 산학협력단이랑 몇몇 지자체가 모여서 업무협약을 맺었는데, 그 자리를 지칭하는 용어도 결국 거버넌스였다. 사실 들여다보면 그냥 서로 가진 인적, 물적 자원을 공유하겠다는 건데, 굳이 이렇게 어려운 단어를 써야 하나 싶은 의문이 들었다. 현장에서 들리는 이야기들은 꽤나 실무적인 고충들인데, 서류 제목은 너무 거창하니 괴리감이 느껴진달까.

낯선 용어와 실제 업무 사이의 간극

준법감시나 ESG 공시 같은 주제들을 다룰 때도 이놈의 거버넌스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카카오 준신위 같은 곳에서 AI 거버넌스 대응 전략을 논의한다는 기사를 봤는데, 왠지 나와는 아주 먼 세상 이야기처럼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묘하게 내 업무 범위를 조여오는 느낌이다. 실제로 ESG 자격증을 따볼까 고민하며 강의를 기웃거려봤는데, 비용도 꽤 만만치 않았다. 대략 50만 원에서 100만 원 사이를 오가는 강의들을 보며, 이걸 따서 내 업무가 얼마나 유의미하게 변할까 고민하다가 결국 접었다. 사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 같은 걸 작성하는 실무자 입장에서는 거버넌스라는 큰 그림보다 당장 내일 처리해야 할 데이터 정리가 더 급한 게 현실이니까.

폐형광등 하나 버리는 것도 거버넌스라니

더 웃긴 건 이제는 일상적인 폐기물 처리에서도 이 단어를 만난다는 점이다. 얼마 전 집 근처에서 폐형광등이랑 폐건전지를 버리려다가 E-순환거버넌스라는 곳을 알게 됐다. 콜센터(1599-0903)에 전화해서 물어보니 아파트 단지 내 수거함에 넣거나 행정복지센터로 가져오라고 안내를 받았다. 폐기물 처리 체계를 잡는 것도 거버넌스라는 표현을 쓰는 건 알겠지만, 집 앞 쓰레기 배출 문제까지 거버넌스를 들먹이니 이제는 이 단어만 봐도 피로감이 몰려온다. 거창한 명분은 많은데 정작 내가 겪는 실무는 왜 이렇게 매번 매뉴얼을 찾아봐야 하는 번거로움의 연속인지 모르겠다.

타운홀미팅에서 느낀 알 수 없는 피로감

최근 사내에서 진행한 타운홀미팅도 그랬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했지만, 결국 위에서 결정된 정책을 전달하는 통로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KTNF 같은 서버 장비 도입이나 DaaS(Desktop as a Service) 전환 같은 IT 환경 변화에 대해 설명을 들었는데, 여기에도 보안 거버넌스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았다. 실무자들은 노트북 포렌식이나 보안 정책 때문에 업무 효율이 떨어진다고 아우성인데, 위에서는 보안 거버넌스 구축이 필수라고 강조한다. 서로 다른 곳을 보고 대화하는 느낌이랄까. 결국 보안은 강화되지만 업무의 자율성은 조금씩 줄어드는 것 같아 씁쓸했다.

해결되지 않는 의문과 남은 일들

결국 거버넌스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이 용어를 사용하면 정말로 시스템이 투명해지고 협력이 잘 되는 걸까? 가끔은 이 단어 뒤에 숨어서 복잡한 문제를 단순하게 포장하려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아시아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ACGA의 서한이나 대기업의 금융 거버넌스 사례들을 봐도, 결국 실질적인 변화가 생기려면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되어야 하는데, 서류상의 거버넌스는 너무나도 매끈하고 단단해 보인다. 오늘도 나는 이름만 거창한 거버넌스 관련 서류를 하나 작성하며 퇴근 준비를 한다. 이 문서가 정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지, 아니면 그냥 서랍 속에 묻힐지 알 수 없는 채로 말이다.

“갑자기 거버넌스라는 단어가 서류에 보이기 시작했다”에 대한 3개의 생각

  1. 글을 읽고 보니, 거버넌스라는 단어가 덮어씌워지면서 실제 업무의 핵심이 희석되는 느낌이 와닿네요. 마치 중요한 데이터 정리보다 보고서 작성에 급급한 상황에서 더 큰 그림을 보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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